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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7. 13.

    by. bluelunar

    목차

      우라늄-235로부터 배우는 윤리와 철학

      1. 138억 년의 흔적에서 시작된 원소, 우라늄의 이야기

      우라늄(U)은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자연 원소 중 하나다. 주기율표 92번, 원자번호로는 수소보다 91배 크며, 지구 형성 초기부터 존재해온 지질학적 원시물질이다.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 세 가지 동위원소—U-238, U-235, 그리고 극미량의 U-234—로 존재하는데, 그 중 U-235는 전체 우라늄의 0.72%에 불과한 희귀한 존재다. 그러나 바로 이 0.72%가 인류의 에너지 체계를 뒤바꾸고, 가장 강력한 무기의 핵심이 되었으며, 인문학적 사유를 촉발한 물질이 되었다.

      우라늄-235는 다른 동위원소들과 달리 자발적인 핵분열이 가능하다. 즉, 중성자 하나만 맞아도 U-235는 두 개의 가벼운 원자핵으로 쪼개지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새로운 중성자들을 방출한다. 이 중성자들이 다시 다른 U-235에 충돌하면 또 다른 분열이 일어나고, 이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물질의 질량 일부가 에너지로 변하는 이 과정은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식 E=mc²의 실현이며, 1g의 U-235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석탄 수 톤을 태운 것과 맞먹는다. 이 원소는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이 응축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2. 핵의 문을 연 날 – 우라늄-235와 인간의 선택

      1938년, 독일의 화학자 **오토 한(Otto Hahn)**과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n)**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쬐는 실험을 하던 중,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다. 우라늄이 두 개의 가벼운 원소로 쪼개지는 핵분열(fission) 현상이 관측된 것이다. 곧이어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이론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는 이를 정확히 해석하고, 핵분열이 이루어졌으며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바로 이 순간이 원자력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곧 정치적 현실과 맞닿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던 시기, 나치 독일이 우라늄-235를 이용한 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정보가 퍼지며,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를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는 20억 달러, 13만 명의 인력, 전대미문의 과학자 네트워크가 동원된 역사상 최대의 과학 군사작전이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는 우라늄-235로 만든 최초의 핵무기였다. 이 한 방울의 물질이 도시를 파괴하고, 전쟁을 끝내며, 과학자들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원소를 연구했는가?”

      3. 에너지의 영웅인가 파괴의 괴물인가 – 원자로 속의 U-235

      우라늄-235는 전쟁 이후 **평화적 사용(Peaceful use of nuclear energy)**이라는 명분 아래 원자력 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원자로에서 U-235는 천천히 핵분열하며 열에너지와 전기를 생산하고, 이는 석탄이나 석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1kg의 U-235가 내는 에너지는 석탄 약 2,700톤과 맞먹는다. 또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어, **‘청정 에너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U-235는 매우 소량 존재하며, **농축 과정(Enrichment)**을 통해 원자력에 쓸 만큼의 농도로 분리해야 한다. 이 과정은 핵무기 개발과도 연결될 수 있어, 오늘날에도 국제사회는 우라늄 농축 기술을 감시하고 규제하고 있다. 이란 핵 협정이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이 모두 U-235의 농축 수준과 관련된 문제이다. 에너지와 파괴 사이, 과학과 정치 사이에서 U-235는 늘 긴장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원소가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화학적 핵심인 이유다.

      4. 핵이라는 질문 – U-235가 남긴 윤리와 철학

      우라늄-235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위대함과 동시에 그 위험성을 함께 보여준다. 물질은 중립적이다. 그러나 그 사용은 인간의 목적과 도덕에 달려 있다. ‘작고 희귀한 원소 하나가 문명을 지탱할 수도,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힘을 통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과학자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기술은 누구의 손에 쥐어져야 하는가?”

      오늘날 인류는 다시금 원자력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 기후 위기 대응 차원에서 원자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으며, 우라늄-235는 여전히 그 중심에 있다. 동시에 핵 확산 방지, 사고 위험, 폐기물 관리라는 문제도 공존한다. 이처럼 U-235는 ‘양면의 진실’을 지닌 원소이며, 우리가 어느 면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사유와 시스템, 그리고 윤리에 달려 있다.
      결국 이 원소는 단순한 원자핵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 수준을 비추는 철학적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