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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lunar의 블로그 입니다. 화학 물질의 역사와 그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 2025. 7. 14.

    by. bluelunar

    목차

      우연히 발견된 테플론 하지만 우리 일상에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1. 기체가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된 고체 – 우연의 과학, 테플론의 탄생

      1938년 미국 뉴저지의 케미컬 기업 듀폰(DuPont) 소속 화학자 **로이 플렁킷(Roy J. Plunkett)**은 냉장고용 냉매 개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불소계 기체인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TFE)**을 고압 상태에서 저장한 용기를 다음 실험을 위해 열어보려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안에 있어야 할 기체가 사라지고, 대신 희고 미끄러운 고체가 내부 벽에 붙어 있었다. 실험은 실패처럼 보였다. 그러나 호기심 많았던 플렁킷은 그 고체의 성질을 분석해보았고, 그것이 상상 이상으로 특별한 물질임을 곧 알아차렸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테플론’이라 불리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이었다.

      이 물질은 상온에서 안정적이며, 극한의 열과 화학약품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전기 절연성까지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어떤 물질도 표면에 달라붙지 않는 비범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독특한 특성은 당시엔 그 용도를 단번에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화학자들은 곧 이 물질이 일상과 산업에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미래의 소재라는 점을 직감했다. 테플론의 발견은 실험의 실패가 오히려 기적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과학의 미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 전쟁이 불러온 테플론의 실용화 – 레이더, 우주, 그리고 프라이팬

      테플론은 처음엔 군사 기밀 소재로 활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은 테플론의 내열성과 절연성을 이용해 레이더 장비의 부품과 배선을 보호했으며, 특히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핵무기 제조 과정의 가스 확산 장치에도 사용되었다. 우라늄-235를 분리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에는 강한 부식성과 열에도 견디는 고분자 재질이 필수적이었고, 테플론이 그 조건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전후, 이 소재는 민간으로 이전되며 정말 상상도 못한 용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1954년, 프랑스의 기술자 마르크 그레고리(Marc Grégoire)는 아내의 요청으로 테플론을 조리도구 바닥에 코팅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논스틱 프라이팬이었다. 이후 ‘테팔(Tefal)’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졌고, 테플론은 전 세계 가정에 퍼지며 조리 방식의 혁신을 이끈 상징적인 소재로 자리 잡는다. 고급 전자기기, 항공기 부품, 인공관절 등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며 테플론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붙지 않는 만능 소재”**로서 과학적 상상력을 실현시켰다.

      3. ‘달라붙지 않음’이 남긴 윤리적 흔적 – 테플론의 그림자

      하지만 테플론의 눈부신 특성과는 별개로, **그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합물인 퍼플루오로옥탄산(PFOA, 또는 C8)**이 문제로 떠오른다. 이 물질은 인체에 축적되어 간 손상, 면역계 교란, 갑상선 이상, 생식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환경에도 잔류하여 **‘영원한 화학물질(Persistent Chemicals)’**로 불린다. 2000년대 초, 듀폰은 이 물질의 유해성과 관련된 고발과 소송에 직면하게 되었고, 2010년 이후 PFOA를 점진적으로 퇴출하는 국제적 합의가 이뤄졌다.

      2019년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가 공개되며, 듀폰이 오하이오 강 유역에 테플론 제조 공정을 통해 PFOA를 방류한 사건이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무해한 테플론 코팅 아래 숨겨진 화학의 윤리”**를 조명하며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테플론 자체는 여전히 매우 안정적이고 안전한 물질이지만, 그 ‘제조 과정’이 문제였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화학은 기능만이 아니라 제조 윤리와 환경 지속성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사유가 필요하다.

      4. 테플론의 철학 – 아무것도 붙지 않지만, 모든 것을 연결하다

      테플론은 단순한 고분자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붙지 않음"이라는 개념을 산업과 일상에 도입한 철학적 물질이다. 우리는 테플론을 통해 조리의 방식이 바뀌었고, 전자기기의 안정성이 높아졌으며, 의료 기술이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성’, ‘기업의 책임 회피’, ‘과학과 자본의 불균형’**을 경험했다. 테플론은 “어디에도 달라붙지 않는” 재질이지만, 그 존재는 오히려 모든 산업과 윤리, 소비자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결국 테플론은 우리에게 **‘기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화학적 거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소재 중 하나가 동시에 가장 많은 법적 분쟁과 도덕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역설은, 과학이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라 인간 사회와 얽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내일 아침 사용하는 프라이팬 위의 달걀 한 알은, 실은 20세기 과학과 산업, 윤리와 환경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