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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죽음을 안고 태어난 물질, 그러나 심장을 살리다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은 그 이름만 들어도 귀를 막고 싶어진다. 흔히 ‘폭발물’이라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이 화합물은 놀랍게도 심장병 치료제로도 사용되는 이중적 운명을 지녔다.
1847년, 이탈리아의 화학자 **아스카니오 소브레로(Ascanio Sobrero)**는 글리세롤과 진한 황산 및 질산을 반응시켜 이 화합물을 처음 합성했다. 그는 곧 그것이 작은 자극에도 폭발할 수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물질임을 발견하고, 동료들에게 “이건 실험실에 보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 물질은 몇십 년 후,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사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에 의해 다시 주목받는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의 엄청난 폭발력을 활용해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발명하고, 산업혁명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벨은 수많은 죽음을 불러온 발명의 대가로 훗날 **노벨 평화상(Nobel Peace Prize)**을 창설하게 된다.
이처럼 니트로글리세린은 ‘죽음의 분자’로 시작했지만, 동시에 인류의 진보와 평화, 생명 유지에 기여한 화학적 패러독스를 품고 있다.
2. 산업혁명을 견인한 분자 – 다이너마이트로 바뀐 운명
니트로글리세린은 순수한 상태로는 다루기 어려운 불안정한 액체였지만, 알프레드 노벨은 이 물질을 **규조토(Diatomaceous earth)**와 섞어 고체 상태로 만든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함으로써, 대중적이고 안전한 산업용 폭약으로 변환시킨다.
1867년 발명된 이 기술은 채굴, 터널 공사, 철도 건설 등 산업 현장에 즉시 도입되며 산업혁명의 엔진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이너마이트는 말 그대로 산을 뚫고, 길을 만들고, 문명을 확장하는 데 핵심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그 힘은 양면성을 지녔다. 다이너마이트는 전쟁과 테러, 암살과 대량 살상에도 사용되며, 과학이 무기화되는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알프레드 노벨은 이 양가적 현실에 깊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고 전해지며, 생의 말미에는 자신이 만든 파괴의 도구를 속죄하기 위한 유산으로 노벨상 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가 만든 다이너마이트의 핵심 성분이자 ‘죽음의 분자’였던 니트로글리세린은, 불과 수십 년 뒤 심장병 치료제로 재발견된다.
3. 혈관을 열고 심장을 살리는 폭약의 반전
1878년, 영국의 의사 **윌리엄 머독(W. Murrell)**은 니트로글리세린을 극소량 사용했을 때 심장혈관 확장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발표한다. 혈관을 이완시켜 협심증, 고혈압, 심부전 등 심장질환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체내에서 **산화질소(NO)**를 방출하며, 이는 혈관 평활근을 이완시키는 생리적 작용을 유도해 혈류를 원활하게 한다. 즉, 고통스러운 가슴 통증을 완화시키고 심장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니트로글리세린은 설하정(혀 밑에 넣는 약) 또는 패치 형태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심지어 구급차 안에 비치된 응급 심장약의 대표적인 성분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변화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전쟁과 파괴의 상징에서, 생명 연장의 의학적 자산으로 전환시킨 사례로 평가되며,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놀랍게도, 현대 심장병 환자들 중 상당수가 이 ‘폭발물’을 처방받고 있으며, 이 약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조용히 살리고 있다.
4. 과학과 인간성 사이에서 – 니트로글리세린이 던지는 질문
니트로글리세린은 과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이중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위험하고 파괴적인 물질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고통 속의 환자들에게 생명을 연장할 기회를 주는 분자가 되었다.
이는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와 역할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분자가 생명을 앗아갈 수도, 되살릴 수도 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우리에게 과학기술의 힘이 언제나 윤리적 성찰과 함께 가야 함을 가르쳐주는 존재다.
폭약과 치료제, 파괴와 치유라는 상반된 정체성을 모두 품은 이 물질은 단순한 화학적 구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바로, 과학과 인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인류의 역사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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