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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7. 31.

    by. bluelunar

    목차

      우연히 곰팡이에서 발견한 페니실린, 항생제의 상징

      1. 곰팡이에서 태어난 구원의 분자

      1928년, 런던의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일하던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감기 바이러스 실험을 하던 중, 실험실 책상 위에 방치해둔 세균 배양접시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바로, 한 부분에 곰팡이가 자라나 있었고, 그 주변의 박테리아는 죽은 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플레밍은 이 곰팡이가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이라는 일종의 푸른곰팡이라는 점을 알아냈고, 그 곰팡이가 분비하는 어떤 물질이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는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명명했다. 그 당시만 해도 상처 감염이나 폐렴, 성병은 치명적 질병이었고, 항균제로 사용되던 화학물질들은 독성이 강하고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페니실린은 상대적으로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특정 세균에는 강력한 살균력을 보였고, 곧 “세상을 바꾼 곰팡이”로 불리게 된다. 이처럼 페니실린의 발견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찰력과 과학적 직관의 결정체였다.

      2. 전쟁이 만든 기적 – 대량 생산의 역사

      페니실린의 발견은 위대했지만, 실험실에서 배양된 페니실린은 너무 적은 양이었다. 그것을 대량으로 정제하고 안정화시키는 기술은 플레밍의 손을 벗어난 일이었다. 여기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에른스트 체인(Ernst Boris Chain)**이다. 그들은 페니실린을 정제하고, 생체 내 효과를 검증해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대규모 산업화에 성공하게 된다. 특히 옥수수 시럽으로 곰팡이를 배양하는 공정, 그리고 페니실린을 냉각, 분별, 결정화하는 기술이 발명되면서
      1944년에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연합군 병사들에게 공급될 만큼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페니실린은 전장에서 생명을 구하고, 수술 후 감염을 막았으며, 그 효과는 “전쟁을 이긴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플레밍, 플로리, 체인은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되며, 페니실린은 인류의 기대수명을 10년 이상 연장시킨 20세기 최고의 의약 혁명으로 기록되었다.

      3. 베타락탐 고리와 항생제의 시작

      페니실린의 화학식은 C₁₆H₁₈N₂O₄S이며, 가장 핵심적인 구조는 바로 **‘β-lactam 고리’**다. 이 네 개의 원자가 이루는 사각형 모양의 고리는 **세균의 세포벽 합성 효소(transpeptidase)**에 결합해, 세균이 스스로 세포벽을 생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세균은 내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하게 되는 것이다. 이 β-lactam 고리는 이후 암피실린, 아목시실린, 메티실린 등 수많은 페니실린 유도체의 개발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항생제 시대(Antibiotic Era)’**의 개막을 의미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는 페니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박테리아가 등장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MRSA(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즉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다. 이로 인해 제약업계와 과학계는 β-lactamase 억제제 개발, 다른 계열 항생제 개발, 복합 약물 사용 전략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항생제 내성은 여전히 21세기 보건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페니실린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힘을 지키기 위해선 올바른 사용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다.

      4. 곰팡이에서 시작된 인류의 윤리적 질문

      페니실린은 단지 의약품이 아니라, 인류의 도덕적 기준을 시험하는 분자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지만, 초기엔 부자와 정치인, 군 장성에게만 공급되었으며, 자본과 생명의 가치 사이에서 윤리적 논쟁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항생제의 남용은 동물 사육, 농업, 제약업계의 책임 문제로 이어지며 "어디까지가 이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오늘날, 페니실린은 일반적인 감염 치료에 여전히 사용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항생제’라는 개념의 상징이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위대한 분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과학이 인류에게 던진 가장 중요한 화학적 선물에 대한 책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