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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lunar의 블로그 입니다. 화학 물질의 역사와 그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 2025. 8. 3.

    by. bluelunar

    목차

      가구, 건축 자재, 코팅제, 전기 부품 등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물질, 하지만 오남용의 역사가 있는 멜라민

      1. 도마 위로 오른 플라스틱의 화학자

      멜라민(Melamine)은 화학식 C₃H₆N₆, 세 개의 아미노기가 육각형 트리아진 고리에 결합된 질소 풍부한 유기 화합물이다. 19세기 독일 화학자 Justus von Liebig이 무색의 결정 형태로 처음 합성한 이 물질은 가소성, 내열성, 비전도성이라는 특성을 갖추며 곧 생활 플라스틱 산업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했다. 멜라민이 주로 사용된 것은 멜라민 수지라는 고분자 형태로, 이는 포름알데하이드(formaldehyde)와의 축합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수지는 단단하고 내열성이 뛰어나며, 외관상 도자기처럼 보이면서도 가볍고 깨지지 않아 20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 식기류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한국의 학교 급식 트레이, 캠핑용 식기, 가정용 도시락 용기 등은 대부분 이 멜라민 수지로 만들어졌으며, ‘플라스틱의 혁명’이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무해한 일상의 분자가 세계적인 식품 공포를 일으킨 화학 범죄의 주역이 될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2. 무해한 분자의 위험한 오용

      멜라민은 식품 자체에는 절대적으로 사용되지 않아야 하는 비식품용 화학물질이다. 그러나 이 물질이 단백질 함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 위한 수단으로 식품에 첨가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인 식품안전 위기가 촉발되었다. 사건은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수천 마리의 애완동물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공통점은 모두 중국산 반려동물 사료를 섭취했다는 점이었다. 조사 결과, 사료 속에는 질소 함량을 높이기 위해 멜라민이 첨가되었고, 이는 신장 결석을 유발해 동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전조에 불과했다. 2008년, 중국에서 멜라민이 첨가된 유아용 분유가 유통되며 수십만 명의 신생아가 신장 이상 및 급성 신부전 증세를 보였고, 최소 6명의 영아가 사망하는 국가적 재난 수준의 사건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단지 식품안전의 문제를 넘어서, 국제무역, 정치 신뢰, 소비자 권리, 과학 기술의 책임성까지 전 세계적으로 경종을 울렸다.

      3. 화학은 죄가 없다 – 오용된 과학의 교훈

      멜라민 자체는 식기류나 가구에 사용하는 한에서 매우 안전한 물질이다. 강한 가열에도 잘 분해되지 않고, 전기적 절연성과 내충격성이 뛰어나 가구, 건축 자재, 코팅제, 전기 부품 등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물질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라민은 지금까지도 ‘위험한 화학물질’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화학 그 자체의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오용과 탐욕의 결과라는 점에서 화학이 아닌 사회적 통제와 교육, 정책의 부재가 초래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멜라민은 음용 가능한 농도 이하에서는 체내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배출되거나 대사되지 않고 통과한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다량의 노출 시 요로결석, 신장 손상, 발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식품에서는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원칙이 적용된다. 이 원칙은 단 1mg의 멜라민이라도 식품 원재료로 허용되지 않는 매우 엄격한 규제다.

      4. 숫자보다 윤리가 우선인 시대

      멜라민이 식품에 몰래 첨가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단백질 함량 검출은 총질소량 측정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멜라민은 질소 함량이 무려 66%에 달하기 때문에, 이를 소량 첨가해도 ‘고단백 식품’처럼 보이게 조작할 수 있었다. 검사 기술의 한계와 윤리 의식의 부재가 만나 일어난 전형적인 ‘제도적 구멍’이었다. 이 사건은 과학 기술이 단순히 정확한 데이터 제공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화학물질은 중립적이다. 그것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느냐, 혹은 비극을 부르느냐는 오직 인간의 손과 판단에 달려 있다. 멜라민 사태 이후, 전 세계는 식품 중 질소계 물질 측정 기술을 개선했으며, LC-MS/MS(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와 같은 고감도 기법을 도입하여 유사 질소물질에 의한 조작 가능성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또한 화학자와 공학자, 정책입안자, 윤리학자 간의 협업 필요성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과학 기술의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